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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mans 로마서 9_19-29_우리는 (21): 감히 말대답을 할 수 없다 - 주일설교 - 루이빌새한장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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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7-24, Sunday

Winning Soul Ministry

Louisville, Kentucky

Sanghun Kim/Saehan Church of Lou.

 

우리는 (21): 감히 말대답을 없다

 

로마서9:19-29

대화를 나눌 때, 말대답을 해보신적 있으세요? 아니면, 말대답을 들으신 적이 있으시죠? 말대답을 해보셨다거나 말 대답을 들어보신 적이 있으시다면, 그 때 자신의 심리 상태 혹은 상대방의 심리상태와 이유는 무엇이었다고 생각하시나요? When engaging in a conversation, have you ever talked back, or have you heard someone else talk back? If you've talked back or heard someone talk back, what do you think your mental state or the other person's mental state and reasons were at that time?

말대답을 하는 사람의 심리 상태와 그 이유에 대하여 알아보았는데, 이러한 내용이 있더라구요. I looked into the psychological state of people who talk back and the reasons behind it, and I found some interesting insights. Here’s what I discovered...

일반적으로, 이는 다음과 같은 원인에서 발생할 수 있습니다. 첫째,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고 자아를 확립하려는 욕구에서 비롯될 수 있다고 한다 (자아확립). 둘째, 어떤 상황이나 권위에 대한 저항감이나 불만이 표출될 때 말대답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셋째,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고 주의를 끌기 위해 말대답을 할 수 있다고 하구요. 넷째, 스트레스나 피로감으로 인해 감정이 격해져 말대답이 나올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다섯째, 상대방과의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아서 오해가 발생할 때 말대답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도 한다. 여러분의 경험상 공감이 가나요? Generally, it can stem from the following causes: first, the desire to confirm one's presence and establish one's identity (self-affirmation). Second, talking back can occur when expressing resistance or dissatisfaction with a situation or authority. Third, talking back can be a way to express one's opinion and attract attention. Fourth, emotional outbursts can lead to talking back due to stress or fatigue. Lastly, talking back can result from misunderstandings when communication with the other person is not smooth. Does this resonate with your experience?

그런데, 오늘 함께 읽은 성경 속에서도 말대답하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어요. 하나님의 완전한 주권 속에서 이뤄지는 일들에 대하여, 사람들이“누가 감히 하나님께 말대답을 합니까?”이런 얘기로 시작한다. But today, we also find stories of people talking back in the Bible. Regarding the things done under God's absolute sovereignty, people start with 'Who dares to talk back to God?

저와 여러분 주변에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질 수 있다. 그런 것들은 곧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일어나는 일들인데,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Sometimes, things happen around us that are impossible to understand. These events often occur under God's providence, and it can be challenging to grasp their meaning.

자신이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한다고, 혹은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일이라고 해서, 자신의 실력으로 하나님을 판단하며, 하나님께 따박 따박 말대답을 한다면, 그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싶은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권위에 대한 저항을 하거나 불만을 표시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다른 사람으로부터 주목을 받고 싶은 욕구 때문일 수도 있다. 거기다가 가장 심각한 것은 하나님과 영적인 의사소통이 되지 않아서 그럴 수 있다. When someone talks back to God because they can't see, feel, or understand something, they're trying to assert their presence before God. It could also be a sign of resisting or expressing dissatisfaction with God's authority. Sometimes, it's about wanting to get attention from others. Most seriously, it can be due to a lack of spiritual communication with God.

, 이러한 내용들을 염두에 두고 성경을 살펴보면서 우리는 왜 감히 하나님께 말대답을 할 수 없는지, 오늘 성경본문을 통해서 그 이유를 3가지만 알아보도록 하겠다. Alright, let's consider these points and turn to the Bible to uncover three reasons why we cannot dare to talk back to God, based on today's scripture passage.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하나님께 따져 묻고 싶은 때가 종종 생긴다. 왜 하필이면, 내가 사고를 당해야 하나요? 왜 하필이면 나에게 암인가요? 왜 하필이면 내 자녀인가요? 왜 하필이면 이런 고난을 당해야 하나요? 등등. In a life of faith, there are often moments when you want to question God: Why did I have to have this accident? Why do I have to have cancer? Why my child? Why do I have to face this suffering? And so on.

이렇게 따져 묻는 것을 말대답이라고 한다. 이렇게 말대답하며 따져 묻는 저와 여러분에게 성경은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When we question and challenge God in this way, it's considered talking back. To those of us who talk back like this, the Bible begins as follows...

  1. 그러면 그대는 내게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찌하여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책망하시는가? 누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할 수 있다는 말인가?"
  2. , 사람아, 그대가 무엇이기에 하나님께 감히 말대답을 합니까? 만들어진 것이 만드신 분에게 "어찌하여 나를 이렇게 만들었습니까?" 하고 말할 수 있습니까?
  1. One of you will say to me: "Then why does God still blame us? For who resists his will?"
  2. But who are you, O man, to talk back to God? "Shall what is formed say to him who formed it, 'Why did you make me like this?' "

이 말씀은 곧,“만들어진 것이 만드신 분에게 어찌하여 나를 이렇게 만들었습니까?”하고 말대답을 할 수 있겠는가? 답은‘아니다. 그럴 수 없다’이다. 즉, 우리는 우리를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께 맏대답 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상기시켜 주고 있다. The passage says, “Can what is formed say to the one who formed it, 'Why did you make me like this?'” The answer is 'No, it cannot.' This reminds us that we cannot talk back to our Creator, God.

, 그렇다면, 왜 우리는 하나님께 말대답을 할 수 없는가요?

첫째, 주님이 모든 것을 쓰임에 알맞게 만드셨기 때문이다. (21-22절, 이사야 45:9-10) So, why can't we talk back to God? First, because the Lord has made everything suitable for its purpose. (Romans 9:21-22, Isaiah 45:9-10)

  1. 토기장이에게, 흙 한 덩이를 둘로 나누어서, 하나는 귀한 데 쓸 그릇을 만들고, 하나는 천한 데 쓸 그릇을 만들 권리가 없겠습니까?
  2. 하나님께서 하신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진노하심을 보이시고 권능을 알리시기를 원하시면서도, 멸망받게 되어 있는 진노의 대상들에 대하여 꾸준히 참으시면서 너그럽게 대해 주시고,
  3. 영광을 받도록 예비하신 자비의 대상들에 대하여 자기의 풍성하신 영광을 알리시고자 하셨더라도, 어떻다는 말입니까?
  1. Does not the potter have the right to make out of the same lump of clay some pottery for noble purposes and some for common use?
  2. What if God, choosing to show his wrath and make his power known, bore with great patience the objects of his wrath--prepared for destruction?
  3. What if he did this to make the riches of his glory known to the objects of his mercy, whom he prepared in advance for glory--

토기장이가 각종 질그릇을 만들 때처럼, 각 사람마다 하나님이 쓰시기에 알맞게 만드셨던 것처럼 저와 여러분도 그렇게 알맞게 만드셨다는 뜻이다. 다른 성경(디모데후서 2:20-23)을 보자. Just as the potter forms various kinds of pottery, God has made each person suitable for His purposes. This means that you and I are made just as fittingly. Let’s take a look at another scripture passage (2 Timothy 2:20-23).

20. 큰 집에는 그릇과 은그릇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나무그릇과 질그릇도 있어서, 어떤 것은 귀하게 쓰이고, 어떤 것은 천하게 쓰입니다.

20. Now in a large house there are not only gold and silver vessels, but also vessels of wood and of earthenware, and some to honor and some to dishonor.

  1.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러한 것들로부터 자신을 깨끗하게 하면, 그는 주인이 온갖 좋은 일에 요긴하게 쓰는 성별된 귀한 그릇이 될 것입니다.
  1. Therefore, if anyone cleanses himself from these things, he will be a vessel for honor, sanctified, useful to the Master, prepared for every good work.

여기 계신 분들 중에서 내가 태어나고 싶은 날, 태어나고 싶은 장소, 태어나고 싶은 신분으로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내가 선택해서 내가 되고 싶은대로 태어나지 않았다. 그것을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 하나님의 전적인 주권아래서 태어났다. No one among us chose the day, place, or status into which we were born. We didn’t choose how we came into this world. That’s what we understand as God's providence, being born under God's complete sovereignty.

우리는 모두 하나님 아버지께서 각 사람에게 알맞은 장소와 날짜와 알맞은 부모를 통로 삼아 이 땅에 태어났다. 토기장이가 사용하기에 알맞은 질그릇을 만드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렇게 알맞게 사용하시기 위하여 만드셨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란다. We all came into this world through the suitable place, time, and parents that God chose for each of us. Just as a potter makes vessels suitable for use, we are crafted by God to be just right for His purposes.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왜 나를 이렇게 만드셨냐고 말대답을 할 수 없다. Absolutely, that emphasizes our place within God's greater plan.     By trusting in His divine design, we find purpose even when we don’t       fully understand. Shall we delve into another reason why we can't talk back to God? 

, 왜 우리는 하나님께 말대답을 할 수 없는가요?

둘째, 영광을 드러낼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23절) So, why can’t we talk back to God? Secondly, it’s because there is a purpose to reveal His glory (verse 23).

23. 영광을 받도록 예비하신 자비의 대상들에 대하여 자기의 풍성하신 영광을 알리시고자 하셨더라도, 어떻다는 말입니까?

23. What if he did this to make the riches of his glory known to the objects of his mercy, whom he prepared in advance for glory--

아니, 말도 안되는 환난과 고난을 당하고 있는데,무슨 목적으로 우리를 만드시고 이 땅에서 살게 하셨다고 하는가? 그것은 우리를; 1) 하나님의 영광을 받는 대상으로, 2) 자비를 베푸실 대상으로, 3) 하나님의 풍성하신 영광을 알리시는 그릇으로 만드셨다는 것이다. Even amid seemingly senseless trials and tribulations, there is a profound purpose behind our creation and existence on this earth. We are made to:

  1. Be recipients of God's glory.
  2. Be vessels for His mercy.
  3. Be instruments to reveal His abundant glory.

 

도무지 나의 상식으로는 말도 안되는 얘기고, 그래서 이해도 되지 않는데, 현재 내가 겪고 있는 고난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 그러니 하나님께 말대꾸하며 심술부리지 말아라! 이 말이다.  It might not make sense to our human understanding, and we may not comprehend it, but the suffering we’re experiencing is being used as a tool to reveal God's glory. Therefore, the message is: don’t talk back to God or act out of spite.

이제, 저와 여러분이 이 땅에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환난과 고난을 경험한다고 해도, 그 고난의 목적이 무엇인지 아시겠어요? 그래서 우리는 감히 하나님께 말대꾸를 할 수 없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Absolutely, it’s about recognizing that even our most incomprehensible trials have a purpose within God's grand design. This perspective instills in us a sense of humility and trust, reinforcing that we are not in a position to talk back to God.

그런가 하면 이사야서 45:9-10에서도 감히 하나님께 말대꾸하는 사람들에게 이와같이 경고하고 있다. Indeed, Isaiah 45:9-10 also warns those who dare to talk back to God.

This passage emphasizes the futility of questioning God's plans and purposes, highlighting our place within His divine order. Powerful reminder, right?

  1. 질그릇 가운데서도 작은 한 조각에 지나지 않으면서, 자기를 지은 이와 다투는 자에게는 화가 닥칠 것이다. 진흙이 토기장이에게 '너는 도대체 무엇을 만들고 있는 거냐?' 하고 말할 수 있겠으며, 네가 만든 것이 너에게 '그에게는 손이 있으나마나다!' 하고 말할 수 있겠느냐?
  2. 아버지에게 말하기를 '나를 자식이라고 낳았습니까?' 하는 자와, 자기 어머니에게 '무슨 해산의 고생을 했다는 겁니까?' 하고 말하는 자식에게 화가 닥칠 것이다.
  1. "Woe to the one who quarrels with his Maker-- An earthenware vessel among the vessels of earth! Will the clay say to the potter, 'What are you doing?' Or the thing you are making say, 'He has no hands'?
  2. "Woe to him who says to a father, 'What are you begetting?' Or to a woman, 'To what are you giving birth?'"

, 왜 우리는 하나님께 말대답을 할 수 없는가요? 첫째, 주님이 모든 것을 쓰임에 알맞게 만드셨기 때문이다. 둘째, 자비를 베푸실 대상으로, 영광을 드러내는 도구로 사용할 목적이 있기때문이다. So, why can’t we talk back to God?

  1. Because the Lord has made everything suitable for its purpose.
  2. Because we are meant to be vessels of His mercy and instruments to reveal His glory.

, 이제 마지막으로,

세번째, 약속대로 하나님 자녀가 되었기 때문이다(24-29절). So, finally, the third reason is that we are God's children according to His promise (verses 24-29).

24.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부르시되, 유대 사람 가운데서만이 아니라, 이방 사람 가운데서도 부르셨습니다.

25. 그것은 하나님이 호세아의 글 속에서 하신 말씀과 같습니다. "나는, 내 백성이 아닌 사람을 '내 백성'이라고 하겠다. 내가 사랑하지 않던 백성을 '사랑하는 백성'이라고 하겠다."

  1. even us, whom He also called, not from among Jews only, but also from among Gentiles.
  2. As He says also in Hosea, "I WILL CALL THOSE WHO WERE NOT MY PEOPLE, 'MY PEOPLE,' AND HER WHO WAS NOT BELOVED, 'BELOVED.'"
  1.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다' 하고 말씀하신 그 곳에서, 그들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자녀라고 일컬음을 받을 것이다."
  1. "AND IT SHALL BE THAT IN THE PLACE WHERE IT WAS SAID TO THEM, 'YOU ARE NOT MY PEOPLE,' THERE THEY SHALL BE CALLED SONS OF THE LIVING GOD."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은 이미 예언해 놓으신대로, 특정 민족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This highlights that God's salvation, as foretold, isn’t limited to a specific nation but is open to all people.

그런데, 늘 반복하여 말씀드리는 것이 있다. 그렇게 하나님께 말대꾸하지 않으면서, 그리고 대들지 않으면서 살고 싶은데, 늘 우리 앞에 커다란 문제가 있습니다. 무슨 문제일까요? 본문을 통해 발견되는 여러분과 나의 죄가 문제입니다. Despite our desire to live without talking back to or challenging God, there's always a significant obstacle in our path. What is it? The issue lies in the sin found within both you and me, as revealed in the scripture.

그 죄는, 자신이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한다고, 혹은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일이라고 해서, 자신의 실력으로 하나님을 판단하며 하나님께 따박 따박 말대답을 하는 죄다. Exactly, the sin lies in judging God with our limited understanding and questioning Him because we can’t see, feel, or comprehend His ways. It’s about recognizing the limitations of our human perspective and the hubris of thinking we can fully grasp the divine.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싶은 욕망의 죄다. 하나님의 권위에 대한 저항을 하거나 불만을 표시하는 죄다. 그리고 다른 사람으로부터 주목을 받고 싶은 욕구의 죄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지 않아서 하나님과 영적인 의사소통을 하지 못하는 죄가 있다. It’s the sin of wanting to assert one's presence before God, resisting His authority, expressing dissatisfaction, and desiring attention from others. Additionally, it's the sin of not being able to have spiritual communication with God due to not being His child.

복음과 초청

이러한 죄는 인간 스스로는 도무지 해결할 수 없는 죄들이다. 그래서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다가오셔서 그러한 죄들을 덮어주셨다. Exactly, these sins are beyond human ability to resolve on our own. That’s why Jesus Christ, who is God, came to us to cover those sins. The gospel and the invitation to grace highlight the profound mercy and love extended to us, making a way where there was none.

어떻게?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값을 대신 감당해 주시기 위해서 피흘려 죽으신 것이다. 죽으셨을 뿐만 아니라, 다시 살아나셔서 하나님 우편에 계시면서 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계신다. 그래서 우리를 하나님께서 만드신 목적대로 사용되도록 빌고 계신다. Exactly—by shedding His blood and dying on the cross to bear the penalty of our sins. And not only did He die, but He rose again and now sits at the right hand of God, interceding on our behalf. He’s continually praying for us to be used according to the purpose God created us for.

이것을 믿는 것이 기독교 신앙이다. 이 예수를 나의 구주 나의 하나님으로 받아들이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지 않은가요?  That belief forms the cornerstone of Christian faith. Accepting Jesus as your Savior and God, living to reflect His glory—there's something deeply transformative and fulfilling in that journey

[설교 찬양] < 맘의 주여 소망되소서,484 3, 4>

[헌신과 결단의 기도] ( 함께 일어서서)  

Making a Decision and Commitment Time;

 

[권면의 말씀]

이제 평안한 마음으로 세상에 돌아가십시오. 선한 일에 용기를 가지시며, 악을 악으로 갚지 마십시오. 항상 연 약한 자를 도우시며, 병든 자를 찾아보시며, 곤란 당하는 이웃을 위로하십시오. 모든 사람을 존경하시며, 주님 께 봉사하고 주님을 사랑하십시오. 모든 일을 믿음과 사랑으로 행하시며 어떤 일에도 소망을 포기하지 마십시 오. 그리고 거룩하신 성령께 순종하여 기쁨과 감사의 생활을 해 나가십시오. 우리 하나님 아버지는 여러분을 항상 도와주실 것입니다.

Now return to the world with a peaceful heart. Have courage in what is good, and do not return evil for evil. Always help the weak, seek out the sick, and comfort those in need. Honor everyone, serve the Lord and love the Lord. Do all things with faith and love, and do not give up hope in anything, and live a life of joy and thanksgiving in obedience to the Holy Spirit. Our Heavenly Father will always help you.

 

[축도] Benediction

지금은 인간의 몸으로 이 세상에 오시어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부활하시어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 시고 우리 인생의 주인이 되어주시는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리스도로 인하여서 죄인 된 우리를 죄 없다고 인정하여 주시고, 우리들의 약점과 문제점을 아시면서도 우리를 일꾼삼아 주신 하나님 아버지의 크신 사랑하심과 우리 안에 계시어서 하나님의 크심을 보게 하시고, 우리의 작음을 보게 하시고, 우리를 낮아지게 하시어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케 하시는 성령님의 감화 감동 교통하심이 오늘 예배를 마치고 돌아가는 모든 분 들에게 지금부터 다시 만날 때까지 함께 있을 지어다.

The grace of our Lord Jesus Christ, who came to this world in human flesh, died on the cross, was resurrected, has all authority in heaven and earth, and is the Lord of our lives, and the great love of God the Father, who has made us sinners His servants even though He knows our weaknesses and problems, and the inspiration, inspiration, and fellowship of the Holy Spirit, who is in us so that we can see the greatness of God, to see our smallness, and to humble us so that we can experience the grace of God. Until the time we are together ag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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