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7-24, Sunday
Winning Soul Ministry
Louisville, Kentucky
Sanghun Kim/Saehan Church of Lou.
주님의 재림과 성도의 준비
- 미루지 마라 -
Joshua여호수아 18:1-28
- 이스라엘 자손이 그 땅을 정복한 뒤의 일이다. 이스라엘 자손 온 회중이 실로에 모여서, 거기에 회막을 세웠다.
-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 유산을 아직도 받지 못한 지파가 일곱이나 남아 있었다.
- 그래서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당신들은 어느 때까지 주 당신들 조상의 하나님이 당신들에게 주신 땅을 차지하러 가기를 미루겠소?
- 당신들은 각 지파에서 세 사람씩을 선출하시오. 내가 그들을 그리로 보내겠소. 그들이 가서 그 땅을 두루 다닌 뒤에, 자기 지파가 유산으로 받을 땅의 모양을 그려서 내게로 가져 오도록 하겠소.
도입;
“누군가 “하나님을 아십니까? 라고 물었다. 그런데 이 질문보다 훨씬 더 중요한 질문이 있다. “하나님은 당신을 알고 계시는가?”라는 질문이다. 심판 날에 정말 중요한 문제는 ‘당신이 하나님을 아는가’가 아니라 ‘하나님이 당신을 아시는가’이다.”” [출처, 밥 소르기 저, 이혜림 역, 내 영이 마르지 않는 연습(경기도 고양: 예수전도단, 2015), 253]
“과연 이보다 더 두려운 말씀이 또 있을까? 나는 하나님을 안다고 생각했는데, 그분은 나를 알지 못하신다니! 이 문제는 생을 판가름하는 중요한 문제다. 어떻게 해야 하나님이 아시는 자가 될 수 있을까?”이 질문에 대한 답을 오늘의 말씀을 통해 알아보자.
지난 주에도 말씀 드렸듯이 이 세상에서 열심히 살았는데, 주님 재림때 주님으로부터‘난, 도무지 너를 모른다!’고 심판을 받게된다면 그것처럼 위험한 인생이 없을 것이다. 우리 인생 가운데 가장 위험한 일이란 무엇인가? 예, 주님께서 난 너를 모른다고 거절 당하는 것이 될 것이다.그래서 결국 지옥가는 것이다!
오늘도 여호수아 18장 속에서 예수 재림때에 거절당하지 않고,“주님께로부터 내가 너를 잘 안다.”“내 내신 고생한 것 다 안다.”“내 대신 섬겨주었던 것 잘 알고 있다.”이런 대접을 받는 것 만큼 최고의 영광이 없을 것이다.
자, 그렇다면 주님께로부터 이러한 환영을 받으며 기쁨으로 주를 맞이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 대답을 몇가지 나눠보자.
첫째, 하늘의 뜻을 구하며 살라 (1절)
여호수아서 13장 이후 17장에 이르기까지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는 이미 요단 동편에서 기업을 분배받았다. 그리고 유다, 에브라임지파에게도 기업 분배를 마쳤다(총 5개지파), 이제 남은 지파라곤 베냐민, 시므온, 스불론, 잇사갈, 아셀, 납달리, 단 지파, 이렇게 7지파 뿐이다.
그런데 이들은 현실에 안주해 버린 나머지 자신들의 기업을 차지하려고 생각도 않은 채 게으름을 피웠다. 이에 여호수아는 그들을 책망하며 땅 분배에 필요한 땅의 지도를 그려 오게했다.
그리고 그 지도를 참고하여 제비를 뽑아 7지파의 땅을 분배하는 데 본장에는 7지파 중 먼저 베냐민 지파가 기업을 분배받는 장면이 나온다.
하나님은 백성들에게 게으름 피우지 말고, 부지런히 하나님께 시선을 모으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살기를 원하신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정복한 후에 중간에 실로에 모여서 회막 세우는 작업을 했다(1절)
- The whole assembly of the Israelites gathered at Shiloh and set up the Tent of Meeting there. The country was brought under their control,
실로에 모여서 - 여호수아는 요단 서편에서 세 지파에 대한 기업 분배를 일단 마친후에 이스라엘의 모든 회중을 '실로'에 모이게 한 다음 회막을 세우게 하였다.
여기서 회막(장막, 성막)은 광야에서부터 가나안 땅인 여기까지 이동할 때마다, 줄곧 12지파의 한 중앙에 늘 존재해 왔었다. 그러나 가나안에 들어온 후 각 지파들이 땅을 분배받아 각자 흩어지기 시작하였기 때문에 회막(성막, 성전)의 위치도 새롭게 가나안 땅의 중심부로 재 조정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재조정된 장소가 현재 가나안 땅의 중심지였던 바로 실로였다.
한편, 여기서 '회막'(會幕)은 '만남의 장막'(Tent of Meeting)이다. 이와같이 불리우게 된 것은 이곳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만나셨기 때문이다.
이처럼 중요한 기업 분배 작업을 일시 중단하고 성막을 세우는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요셉 자손들의 항의 사건(17:14-18) 이후 기업 분배를 받고 편안한 삶에만 정신을 집중하다보니, 더 중요한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하는 일에는 소홀히 하며, 소극적인 태도를 취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바로 이때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중심부에 하나님의 전인 성막을 세움으로써 안주하려는 나머지 7지파에게 가나안 땅에 대한 하나님의 언약을 기억나게하여 새로운 도전을 주려는 의도가 있었다. 그래서 바울이라는 사람도 안주하려는 신앙인들을 향하여 이렇게 말을 했다. 고전10:11-12.
- 이런 일들이 그들에게 일어난 것은 본보기가 되게 하려는 것이며, 그것들이 기록된 것은 말세를 만난 우리에게 경고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 그러므로 서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언제나 우리 삶의 중심에 하나님의 성전을 세우고, 하나님의 뜻을 살피며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가기를 원하고 계신다. 그래서 신약에서 바울은, 고린도 전서 3:16
- 여러분은 하나님의 성전이며, 하나님의 성령이 여러분 안에 거하신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 Don't you know that you yourselves are God's temple and that God's Spirit lives in you?
백성들은 전리품을 차지하여 그것을 즐기며 잠시 안주하며 회막을 중심에 옮겨 세우는 일을 잊고 살았다. 그래서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하나님께 시선을 돌리고 예배하는 일을 소홀히 했다.
그래서 회막(성전)을 세우는 일을 통해서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게하고, 예배의 중요성을 상기시켜 주고있다. 즉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가다듬게하고 새로운 미래 건설을 위해 전기를 마련하는 기회를 갖게했다.
이처럼, 우리의 신앙여정도 안주하는 순간, 우리는 게을러지고 하나님의 명령과 약속을 잊을 수 있다. 이럴 때마다 다시 한 번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기억하기 위해 다시 하나님 앞에 모여서 예배를 드리며 영적인 전기를 마련해야한다.
예수 재림을 맞이할 준비 작업으로;
둘째, 미루지 마라 (3절)
3절. 어느 때까지 미루겠소? – 여기서‘미룬다’는 말은 '늦추다', '게으름을 피우다'라는 의미이다.
따라서 여호수아의 이 말은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거저 주셨는데도 7지파가 그 땅을 취하는 데 게으름을 피우고 있음을 책망하고, 아울러 그들의 분발을 촉구하는 질문이다.
하나님은 은혜로 우리에게 좋은 땅 하늘의 가나안을 얻을 자격을 주셨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소유하는데 너무 게으르다. 우리가 믿음과 소망과 거룩한 기쁨으로 살지 않으면 우리는 저 휴식에 들어가지 못한다. 위에 있는 것들, 즉 하늘에 속한 것들에 관심을 두고 거기 있는 것들과 대화를 계속하지 않으면 우리는 지금 이땅에서도 천국에 살지 못한다.
여호수아의 게으르지 말라고 책망하는 것은 오늘날 하나님 나라의 확장 사업을 미루며 게으름을 피우고 있는 이 시대의 모든 신자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
성도들은 이미 주신 것을 취하는 사람들이다. 직장이나 사회 각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특별히 가정교회 목장의 VIP들, IKC/IYC 선교행사와 같은 것들처럼, 하나님 나라를 확장시키는 일에 있어서는 뒤로 미루지 말라는 뜻이다.
그리고 오직 하나님의 도우심에 힘입어 미루지 말고,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 믿음으로 전진하라는 뜻이다. 이럴 때 우리는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에게 아시는 바 되고 기쁨으로 맞이하게 될 것으로 믿는다. 아멘 아멘!
예수 재림을 맞이할 준비 작업으로;
셋째, 예수를 주인님으로 모셔라 (6, 8, 10절)
여호수아는 갖고 싶은 것을 그림으로 그려오라한다. 마찬가지로 누구나 자기가 좋아하고 하고싶은 것들이 있다. 다 인정한다. 그러나 그것을 주인님 앞에서 확인받는 절차가 남아있다. 이것을 빼먹는 실수를 저지르지 말자.
그래서 여호수아는 그림을 그려온 대로 분배하는 것이 아니라, 그 그림을 가지고 주님 앞에서 확인을 받은 다음에 분배했다. 그 내용이 6절, 8절, 10절에서 나오는데, 대표적으로 6절만 읽어보자
- 당신들은 그 땅을 일곱 몫으로 나누어서 지도를 그리고, 그것을 여기 나에게로 가져 오시오. 그러면 내가 여기 주 우리 하나님 앞에서 제비를 뽑아서, 당신들의 몫을 결정하겠소.
여기서 그 당시 제비를 뽑는 것은 우림과 둠밈으로 하나님의 뜻을 물었다. 그러므로 여호수아는 그들이 차지하고 싶은 땅의 지도를 그려온다고해도 그들의 뜻을 그대로 허락하기보다는 그 것이 하나님의 뜻이 반영된 것인지 아닌지를 확인해보고 몫을 결정해 주겠다는 말이다.
마찬가지로, 인생의 설계도, 미래에 대한 설계도를 주님 앞에서 확인을 받는 작업이 중요하다. 교회에서도 목장에서도 미래 계획을 세운 후, 최종적으로 주님 앞에서 여쭙고 확인 받는 절차를 잊지말자. 그것이 주님을 주님으로 인정하는 태도다.
내 인생의 모든 면에서 예수를 나의 구원자,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못한다면 어떤 결과가 벌어질까? 마태복음 7:21-23
- "나더러 '주님, 주님' 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다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라야 들어간다.
-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에게 말하기를 '주님, 주님,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또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을 행하지 않았습니까?' 할 것이다.
-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분명히 말할 것이다.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물러가라.'"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이 말의 뜻은, 주님이라고 부르면서 삶은 주님 맘대로가 아니라, 자기 맘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하시는 주님의 말씀이다.
예수님도 이 땅에서 언제나 하늘의 뜻을 구하며 사셨다. 그러면서 우리들이 하나님께 아시는 바가 되는 방법을 보여주셨다. 무서운 십자가를 지시기 전, 하나님의 뜻을 구하시는 장면은 우리의 신앙을 다시 추스리게 한다. 마태복음 26:39
39.예수께서는 조금 더 나아가서,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서 기도하셨다. "나의 아버지, 하실 수만 있으시면,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해주십시오. 그러나 내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해주십시오."
- Going a little farther, he fell with his face to the ground and prayed, "My Father, if it is possible, may this cup be taken from me. Yet not as I will, but as you will."
교회 행사들, IKC/IYC같은 행사들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해 주십시오! 라고 기도해야한다. 그럴 때 하나님은 우리를 아신다고 말씀하신다. 갈라디아서 4:8-9절을 함께 읽어보자.
- 그런데 전에는 여러분이 하나님을 알지 못해서, 본디 하나님이 아닌 것들에게 종노릇을 하였지만,
- 지금은, 여러분이 하나님을 알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알아주셨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그 무력하고 천하고 유치한 교훈으로 되돌아가서, 또다시 그것들에게 종노릇 하려고 합니까?
처음에 이런 말씀으로 시작했다. <심판 날에 정말 중요한 문제는‘당신이 하나님을 아는가’가 아니라, ‘하나님이 당신을 아시는가’이다.”>
저는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심판 날에 주님 앞에 섰을 때, 주님께서“내가 너를 아는가?”(Do I know you?) 라고 물으신다면, 어떻게 대답할까?
예, 저는 예수님을 나의 구주 나의 하나님으로 믿고 인정하며 살았고, 성도들과 함께 주인님의 뜻을 받들어, 가정교회를 통하여“영혼구원하여 제자 삼아보려고 애를 쓰다 왔습니다. 특별히 주님이 좋아하시는 어린이 노약자 난민 과부 뿐만 아니라, IKC/IYC를 통해서 어떻게든 주님이 보내주신 성도들과 영혼 구원하는 일좀 해보려고 애를 쓰다 왔습니다.”여러분은 어떤 대답을 하실 건가?
그러면 이렇게 응해주실 것같다는 믿음이 왔다. “내가 너를 잘 안다.”“내 대신 고생한 것 다 안다.”“내 대신 희생하며 섬겨준것 것 잘 알고 있지.”
저와함께 보조를 맞춰주신 여러분들에게도 이와 동일한 말씀을 해주시리라 믿는다.
[설교 후 찬양] 하나님 사랑 변치않는다.
[헌신과 결단의 기도] (다 함께 일어서서)
[축도] Benediction (히13:20-21)